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미니 계획 (문단 편집) === 제미니 6A호 === [[파일:제미니6호.jpg|width=50%]] 1965년 12월 15일 발사, 12월 16일 귀환했다. [[월리 시라]], [[토머스 스태퍼드]] 탑승. [[파일:The_First_Docking_in_Space_-_GPN-2000-001344.jpg|width=50%]] 아제나 위성 제미니 6호 미션의 목표는 표적 위성인 [[ATV(동음이의어)]](아제나, Agena Target Vehicle) 위성과 랑데부를 하는 것이었다. 1965년 10월 26일 발사 예정이었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아제나가 먼저 발사되어 궤도에 진입한 직후 제미니 6호가 발사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먼저 발사된 아제나는 발사 도중 폭발해 버렸고, 이미 발사 준비에 들어갔던 제미니 6호는 긴급히 카운트 다운을 중단하였고 발사는 잠정 연기되었다. 아제나 위성은 이미 여러 차례 발사되어 안정성이 검증된 위성이었지만 제미니 계획을 위해 추가적인 개조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그것이 폭발의 원인이 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결국 NASA의 거듭된 회의 끝에 아제나를 또 발사시켜 랑데부하는 대신 아예 다음에 발사될 제미니 7호와 함께 랑데부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제미니 6호의 미션 명칭도 제미니 6A로 변경되었다. 우주에서 장기 체류를 테스트하는 미션을 수행하기로 되어있는 제미니 7호가 먼저 발사되고 나서 며칠 후에 제미니 6A호가 뒤이어 발사되어 두 우주선간에 랑데부를 시행하기로 했다. 제미니 7호가 1965년 12월 4일 먼저 발사되었고, 제미니 6A호는 12일에 발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발사 당일 카운트 다운 10초에서 제로까지 쫙 세고도 엔진이 발사 직전 ~~[[데꿀멍]]~~ 꺼져버리는 바람에 발사가 연기되었다.[* 3일을 더 미룬 것은 안자랑. 그래도 불붙고 땅에서 뜨기 전에 일찍 꺼져서 가만히 있었던 터라 사출좌석 억지로 쓸 일도 없었다는게 자랑. 만약 [[뱅가드|떠오르다가 갑자기 꺼졌다면]] 더 큰일날 뻔했다.] 다행히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이를 해결하고 사흘 후인 15일에 발사에 성공했다. 제미니 7호는 우주에서 14일간이나 지나야했기 때문에 연료를 아껴야 해서 궤도를 도는 표적 역할을 했고 실질적인 랑데부 임무는 제미니 6A가 수행했다. 제미니 6A호의 조종사들은 제미니 7호 주위에서 선체를 이리저리 조종해가면서 랑데부 임무를 수행했고, 최대 30cm 거리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제미니 6A호는 제미니 7호와의 랑데부 미션을 성공 후 바로 지구로 귀환하였다. 아제나가 없으니 딱히 더 할 일도 없었으니... 대신 이 미션에서 월리 시라는 뭐라도 해보려는 생각이었는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다고 '''[[하모니카]]'''를 들고가서 캐럴을 연주했다. [youtube(RmsOmqf7Hso)] 이 때의 하모니카는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서 연주된 악기'''로서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제미니 6A호의 성공적인 랑데부 임무 수행으로, NASA는 우주에서 도킹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제미니 8호에서 도킹 미션을 테스트하게 된다. 월리 시라는 [[아폴로 계획]]의 첫 유인비행인 아폴로 7호 사령관으로 비행하고 은퇴했다. 다만 마지막 미션에서 우주에서 감기에 걸리는 [[충공깽]]한 쫑파티를 치렀고, 그것이 동료 돈 아이즐리와 월터 커닝햄에게 옮아서 셋 다 콜록콜록. 그러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관제팀과 고성이 오가는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지구로 귀환한 뒤 은퇴하는 시라는 물론 나머지 둘까지 비행자격이 박탈당했다(...) 토머스 스태퍼드는 이후 아폴로 10호 사령관,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의 아폴로 측 사령관을 역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